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忠孝禮정신과 義 - .....아. 도산 안창호 선생의 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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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 선생의 忠

 도산 안창호 선생은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가 야만인 취급을 받고 사는 교포들의 생활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이를 위해 선생께서는 솔선수범을 통하여 이룩하려고 무진 애를 쓰셨다. 교포들의 집을 방문하여 지저분한 집을 청소해 주고, 꽃밭을 가꾸는 등 몸소 실천해 보였다. 그러자 교포들도 감동하여 옷을 깨끗이 빨아 입고,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등 생활습관이 변하게 되면서 미국인들로부터의 멸시가 사라지게 되었던 것이다. 한 미국인 실업가는 안창호 선생의 공적을 찬양하며 건물 하나를 무료로 제공하였고, 민족운동 단체인 공립 협회가 탄생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1906년 귀국하여 이갑·양기탁·신채호 등과 비밀 결사 신민회를 조직하였으며, 실력을 쌓아야만 독립을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운동을 펼치면서 평양에 대성 학교와 정주에 오산 학교를 설립하였다.


  그 뒤 최남선·김좌진 등과 청년 학우회를 결성하고 다시 미국으로 망명하였으며 1912년 미국의 교포들을 모아 대한인 국민총회를 조직하여 총 회장이 되고, 이듬해 로스앤젤레스에서 흥사단을 결성했다.
  3.1운동 뒤 상하이로 가서 임시 정부 내무 총장. 국무총리 서리. 노동총판을 지내고, 독립신문을 창간하였다. 그러면서 임시정부 육성과 민족 계몽에 힘을 기울였다. 1932년 상하이에서 윤봉길 의사의 거사에 관련되어 3년 동안 감옥에 갇히는 등 일생을 정직과 성실로 나라를 위해 몸바쳐 일하다가 1938년 3월 10일 서울 대학병원에서 간 경화증으로 세상을 떠나셨는데 안창호 선생님의 일생은 애국심과 솔선수범의 표상이셨음을 알 수 있다.


  애국 애족 정신이란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이러한 마음이 없이는 정의감이나 희생정신이 발휘될 수 없다. 국가와 민족이 위기에 놓이고 위급한 시기에는 나라를 지키려는 우국지사들이 목숨을 바쳐 싸웠다. 민족의 수난기에는 투쟁이 곧 애국의 수단이었다. 그러나 애국은 그러한 지사들에게만 맡겨지는 것도 아니고 어떤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이 독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국운이 기울고 있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일인지 모르고 안절부절못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라 일을 하는 데는 여러 가지가 있소,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장사하는 일로 나라 일을 하고 있고, 저 능라도에서 김을 매는 사람은 호미를 가지고 나라 일을 하고 있고, 솔밭에서 나무를 하는 사람은 낫을 가지고 나라 일을 하고 있는 셈이요." 도산의 말에서 우리는 애국애족의 길이 바로 자기 주변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착실하게 이루어 나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우리는 주어진 임무를 최선을 다해서 수행하는 것이 애국 애족하는 길이요, 충성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길임을 알았다. 국민의 명예와 애국애족은 거창한 구호를 내걸거나 큰일을 해야만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공직자나 기업인이나 직장에서 성실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여 국가와 인류사회를 위하여 헌신적인 삶을 살아갈 때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할지언정 충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며 훌륭한 애국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